마스크가 조각이 되고, 격리가 색이 된 순간: 팬데믹을 기록하는 공공미술의 변주
팬데믹이 한창이던 어느 날, 도시의 한복판에 커다란 마스크 형상의 조형물이 등장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우리는 왜 그토록 불편했던 시절의 기억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꺼내 들여다보는 걸까? 전염병의 한가운데를 통과한 세대라면 한 번쯤 던져봤을 법한 질문이다. 일회용 마스크가 사라진 자리에는 감염에 대한 공포 대신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흔적이 새로운 조형 언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공공미술의 제작 과정과 향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작고 밀폐된 갤러리 대신 야외 광장과 공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미술관의 벽은 사라지고 대신 바람이 통과하는 투명한 격벽 너머로 작품이 전시되는 풍경이 익숙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전시 공간의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작품이 놓이는 물리적 환경이 바뀌면서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 나아가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실내에서 조용히 감상하던 그림이 아닌, 도시의 소음과 먼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머금은 조형물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기록물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전염병의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 지나치게 상투적이거나, 반대로 외상 후 스트레스처럼 회피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많은 도시가 긴급하게 설치한 임시 구조물들은 방역의 기능만을 강조하다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요소로 전락하곤 했다. 실제로 어떤 프로젝트는 의료진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대형 현수막으로 내걸었지만, 그 문구는 곧바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했다. 단순히 희생을 기리거나 고마움을 표하는 차원을 넘어, 시민들이 팬데믹 동안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불안, 고립, 연대, 그리고 피로감—을 정직하게 끌어안는 작품은 드물었다.
한 도시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예술가들은 버려진 백신 접종 센터의 칸막이와 의료 폐기물을 수거해 재활용한 조형물을 제작했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실제 격리 수기를 익명으로 수집해 작품 표면에 새겨 넣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작품 앞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옆에 낙서처럼 자신의 경험을 적어두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작품은 완성된 상태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었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공공미술의 역할은 ‘치유’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에서 벗어나, ‘공동의 기억을 검증하고 공론화하는 플랫폼’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건강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팬데믹 초기, 정부와 기관이 내세운 ‘손 씻기’, ‘마스크 착용’이라는 문구는 지시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다가와 피로감을 가중시켰다. 반면, 어떤 예술가들은 바이러스의 구조를 형상화한 대형 설치물의 색채를 지역별 확진자 수의 증감에 따라 조명으로 투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빛의 움직임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외우거나 뉴스를 반복적으로 청취하게 만드는 대신, 직접 눈으로 데이터의 흐름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이는 정보 전달을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시켜 시민들이 자신의 건강 상태와 지역 사회의 위험도를 보다 직관적으로 인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했다.
재난 상황에서 공공미술이 지닌 진정한 힘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함께 견디고 있다’는 실존적 연대감의 시각화에서 나온다. 어떤 도시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확진자 발생 동선을 야광 물감을 이용해 보도블록에 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면 어렴풋이 드러나는 그 동선은, 발길이 끊긴 상권의 골목길을 걷는 행인들에게 ‘과거의 위험’을 현재의 시점에서 되짚어보게 하는 시간성을 부여했다. 이처럼 작품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보다 시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택할 때, 관람객은 과거의 사건을 단순한 뉴스가 아닌 자신의 신체적 기억으로 재구성할 기회를 얻는다.
**결국 팬데믹을 기록하는 공공미술의 가치는, 위기가 종식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다시 읽히는 텍스트로서의 가능성에 달려 있다.**
전염병의 기억은 순차적이지 않다. 우리는 방역 지침이 완화된 어느 날 갑자기 마스크를 벗었지만, 그 시절의 감각은 불특정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소환된다. 공공미술이 해야 할 일은 그 소환된 기억이 단순한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마스크 착용의 불편함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킨 조각상, 백신 접종 후 맞이하는 일상의 설렘을 폭죽처럼 표현한 미디어 아트, 사회적 거리두기의 규칙을 놀이처럼 풀어낸 바닥 그래픽 등은 당시의 문화를 기억하는 하나의 축이 된다.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에 우리가 남긴 것은 상실과 고통만이 아니다. 그 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인류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어떻게든 의미를 찾고자 했던 저항의 증거다. 이 증거들이 도시의 곳곳에 남아 다음 세대에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말해줄 때, 공공미술은 비로소 단순한 장식을 넘어 시대의 거울이자 다음 재난을 준비하는 지혜의 보고가 된다. 거리를 지나다 마주친 낯선 조형물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 보자. 그것이 단순한 쇳덩이나 색채가 아니라, 가장 격렬했던 우리 시대의 기록임을 이해하는 순간, 미술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